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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조선일보] 노재명의 일사일언 초고(1) 한국의 기록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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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월 [조선일보] 노재명의 일사일언 초고(1) 한국의 기록 문화
어느날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의 옛날 얘기와 자장가 소리가 귀에 맴돌 때가 있다. 그리고 아내와 연애시절 단골로 갔던 찻집이며 딸아이랑 처음 여행 갔던 산골의 민박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린시절 밤새워 읽던 만화책도 눈물겹도록 다시 보고플 때가 있다. 그런데 불과 오래전의 일도 아니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 추억들을 다시금 음미해 보고 싶어도 찾을 길 없어 아쉬울 때가 많다.
이따금 마치 타임머쉰을 타기라도 한듯 설레이는 마음으로 집밖을 나서 보지만 기억 속의 소박하고 단아한 찻집은 이미 온데간데가 없다. 실내 확장 공사, 대형 간판으로 온통 바뀐 뒤라 옛 정취를 느끼기 어렵고 그래서 다시 찾아간 것을 후회하며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또 조금 남아있던 기억 마저도 그 변해버린 새로운 화면의 충격 탓에 순간적으로 지워져 버리고 말 때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유행도 바뀌고 골목의 모습도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 삶의 흔적은 너무 쉽게 잊혀져 버리는 게 아닌지, 애써 추억들을 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세기에 우리가 겪은 상처와 굴곡이 너무 컸기에 과거를 망각하려는 게 이제 습관화된 것은 아닌가. 20세기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우리의 부끄러운 한 단면 때문에 너무나 많은 부분을 없애고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역사는 수 천년이 됐건만 문화의 향기, 앞세대의 흔적과 지혜를 찾아보기 어렵고 불과 20년 전에 취입된 음반의 마스터테입도 사라져 버린 게 허다하고 영화 필름, 방송 테입도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본인은 학자나 기록 전문가도 아닌데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몇 초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유서도 쓰고 그 상황을 묘사하는 글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는 범국민적으로 기록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우리도 오래전엔 {직지}, {승정원 일기} 같은 우수한 기록 문화가 있었으니 지금의 일본을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옳게 기록하지 않는 일본에게 돌을 던질 일도 못되는 게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추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경험한 지혜를 기록하여 다음 세대에 교훈으로 전하는 것 당연히 행해야 하는 일 아닌가. 철저한 기록 정신은 정의롭고 슬기로운 삶을 가능케 해준다.(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2001년11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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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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