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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12월 [월간 에세이] 노재명의 수필 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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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월간 에세이] 노재명의 수필 초고(맑은 가을하늘, 그리고 곁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 다음 글은 2001년 12월호 {월간 에세이}에 실린 글의 초고이다.
이달의 에세이
맑은 가을하늘, 그리고 곁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16년 전 내가 국악에 처음 매료된 것은 일제시대 유성기음반에 담겨있는 옛 명창들의 판소리였다. 이 유성기음반이 내겐 전설적인 대명창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기분이란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 명창은 이동백(李東伯, 1866∼1950)이다. 이동백의 소리는 현재 녹음으로 남아있는 역대 명창들의 소리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할 만큼 최고의 기량을 지니고 있다.
장승, 솟대, 조선 막사발 [이도다완]에서 볼 수 있는 우리만의 멋을 이동백의 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무위로 만든, [자연]스러운, 자연을 닮은 이런 예술은 우리 대다수 백성이 지닌 심성이었고 너무 흔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거기에는 따뜻한 정감이 있고 동서남북 균형은 안맞는 것 같은데 무어라 흠 잡을 수 없고 대충 만든 것 같은데 깊은 혼이 서려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자연과 동떨어진 채 도시 생활에 젖어있다 보니 이제 우리도 우리만이 지녔던 장점, [자연]을 닮은 무위의 예술이 점차 희귀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동백이 더욱 그립다.
이동백의 소리는 처음 탁 들으면 흠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이 엉성한 듯 보인다. 마치 택견 고수가 술에 취한 듯 좌우로 흐느적거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흠을 잡으려 하면 어느 한군데 잡을 수가 없다. 이동백은 실수인 듯 보이는 소리 조차 정감이 있고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이동백 소리의 매력이다. [이도다완]에 돌출되어 있는 불순물 자국 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소리는 이제 유성기음반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악이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하게 쇠퇴하다 보니 나는 그럴 거라 여겼다. 그런데 금년 여름 경기도 양평에 박물관을 짓고 다섯달을 지내면서 어느날 문득 이동백과 같은 소리를 바로 곁에서 들을 수 있었다.
박물관 뒤에 큰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발산하는 소리들이었다. 새소리, 벌레소리, 바람소리였다. 유성기음반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정감어린 소리들을 현실 공간에서 거의 같은 느낌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자연 곁에서 늘 살았고 그 속에서 소리를 연마한 이동백이었기에 그런 기가 막힌 소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맛을 알게 해준 이동백이 고맙다. 그리고 늘 곁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지금의 내 터전이 꿈만 같다.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공간과 시간들, 행복이 아니고 또 무엇이랴. 가을하늘은 맑고 곁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참으로 아름답다.
2001년12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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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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