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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7일(토요일) 14:00~15:00 KBS 한민족방송 '전통으로 소리길로' 노재명 출연 "중고제 판소리 이야기" 방송.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중고제 명창 이동백 잡가 <새타령> 1928년 음원 소개.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 "중고제 판소리 이야기" 방송 내용
(중고제 특징, 판소리 본질과 정신, 판소리에 왜 호령조·호통조 통성 발성법이 있는가 등)
남상일: 전통 사랑 초대석! 오늘 전통 사랑 초대석에 귀한 손님 모셨습니다.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노재명: 예, 안녕하십니까.
남상일: 네, 반갑습니다.
노재명: 예, 반갑습니다.
남상일: 우리 국악 음반을 이야기할 때 우리 관장님 이름 석자가 등장을 하지 않을 때가 거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또 우리 지금 우리 시대의 음반뿐만 아니라 고음반들까지 아우르는 그런 작업을 열심히 해오고 계시는데요. 이 국악음반박물관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많이 들어가 보거든요. 근데 어디에 있고 어떤 박물관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좀 소개 부탁드립니다.
노재명: 예, 원래 양평에서, 경기도에 2001년도 개관을 했구요. 최근에 서울 한양대 후문쪽 청계천변에 용답동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주로 인터넷으로 많이 감상하실 수 있게 서비스를 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상일: 네, 이 노재명 관장님은 우리 전통음악을 연구하시는 학자로서, 또 글을 쓰시는 작가로서 이렇게 또 방송이나 인터뷰에 응해 주시는 방송인으로서 또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오고 계시는데요. 제가 궁금한 것이 원래 관장님의 전공이 어떤 장르였는지 궁금하거든요.
노재명: 예, 원래는 건축을 전공했어요. 제 세대 때, 저희 동년배들은 주로 여성분들이 국악과를 가시고 국악과에 남성분들이 별로 없다 보니까 이거는 그냥 취미로 하고 건축을 원래 할려고 그랬는데 건축과 첫날 처음 들어간 순간서부터 이거는 제가 할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국악 관계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상일: 아, 정말 어찌 보면 건축이라는 것도 사람이 사는 하나의 집을 짓는 것이고 이 음반도 역시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음악이라는 참 소중한 것인데요. 지금 소중한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그 중에 또 이 음반 제작도 하시고 저술 활동도 해오셨잖아요. 그런 말씀도 해주시지요.
노재명: 예, 음반·책 해서 한 400여종 제작을 했고 그 다음에 오늘도 제가 책을 2권 다 쓰고 새벽에 출판사에 보내고 CD 3장을 편집 완료하고 왔는데요. 그렇게 기록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남상일: 야, 참 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시고 계시는데요. 오늘은 중고제 판소리 이야기를 한번 관장님을 통해서 들어볼까 하는데요. 우선 우리가 판소리 하면 서편제, 영화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편제, 또 동편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중고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중고제는 어떤 유파지요?
노재명: 예, 흔히 한때 학계에서 중고제 하면은 동편제 절반, 서편제 절반 이렇게 반반씩 중간쯤 섞어 가지고 하는 게 중고제다 이런 좀 약간 이상한 학설이 있었는데 제가 연구한 바로는 그게 아니고 중고제라는 어원 자체가 중간 ‘중’자, 옛 ‘고’자를 써서 중고제인데 그걸 잘못 해석한 거를 중간 ‘중’자, 높을 ‘고’자 써서 중간쯤 높여 부른다 이렇게 잘못 해석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고 시조, 중시조라는 말처럼 고제, 중고제라는 표현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중고제는 굉장히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께서 생각하실 때 판소리 하면 좀 따분하게 생각하실 수가 있고 거기다가 또 옛날 소린가 보다 아 이거 오늘 따분한 시간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 판소리가 굉장히 재밌고 그 중에서도 중고제가 굉장히 흥미로운 소립니다. 그래서 인제 좀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되구요.
남상일: 하하하.
노재명: 이 중고제나 이 판소리가 수 백년 전승되면서 정말 재밌기 때문에 이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무슨 극기 훈련을 하기 위해서 따분한데 수 백년을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재미가 있는데 어떤 재미가 중고제에 있었냐면은 지금 판소리는 어떻게 보면 전라도 사투리로 해야 된다, 또 쉰 목소리로 해야 된다 이렇게 좀 천편일률적으로 복사판처럼 사진소리라고 하는데 사진 찍어 놓은 거 같이 똑같이 이렇게 좀 단조롭게 됐는데 중고제 판소리 시절만 하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판소리가 공존했었습니다. 예를 들면은 아니리광대라고 해서 아니리를 재밌게 하는 사람, 또 선비들이 감상했던 정가 가곡·가사·시조풍의 그런 판소리, 또 책을 읽는 듯한 그런 말을 빨리 그렇게 하는 그런 독서풍의 판소리, 또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소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중고제 판소리 시절은 음식으로 보자면은 굉장히 뷔페 음식 같이 뭐 육해공군이 다 출동되는 그런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고 다양한 소리를 맛볼 수 있는, 굉장히 재밌는 시절이었다 그런 말씀을 드리구요.
남상일: 네.
노재명: 또 한가지는 그러면 판소리를 그냥 단지 재미와 흥미만을 위해서 했는가. 왜 판소리는 지금 들어보면은 왜 소리를 빽빽 지르고 그러는가.
남상일: 하하하하.
노재명: 감미롭게 발라드로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가 있지요. 그러면은 왜 판소리를 그렇게 막 큰 통성, 막 그냥 목소리 높여서 불렀는가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은 중고제, 고제 소리와 만나게 되는데 판소리를 그렇게 한 이유가 저는 있다고 봅니다.
남상일: 네.
노재명: 그게 가장 중요한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핵심인데요. 판소리 용어로 흔히 “호령조로 소리를 한다”, “호통조 통성으로 한다” 이런 표현을 하지요.
남상일: 예.
노재명: 남 명창님께서 판소리 전문가시기 때문에 잘 아실텐데 그런 표현이 어디서 나왔냐면은, 왜 허구 많은 성음 중에 왜 그 예술을 그렇게 호통, 꾸짖어 가면서 호령을 하면서 부를까 그거를 해석을 하다 보면은 판소리 발생 시기에 판소리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고 중고제의 매력을 알 수가 있고 판소리의 본질과 정신을 알 수가 있는데요. 왜 호령조, 호통조로 하게 됐냐면은 조선시대에 농사를 지어서 서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세금을 내고 나면은 먹을 게 없고 심지어는 세금을 빚을 얻어서 세금을 내고
남상일: 그렇죠.
노재명: 자기는 굶어야 되는 이런 서민들이 많었어요. 그렇게 억울하고 참 가난한 조선시대 평민들이 많었는데 그런 억울하고 약소, 약자 계층을 대변하기 위해서 천대받았던 광대, 예인, 명창들이 목숨을 걸고 나서서 산속에 들어가서 수련을 해 가지고 지금처럼 뭐 남 선생님하고 저하고 이렇게 스피커와 앰프, 마이크에다 대고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남상일: 그렇죠.
노재명: 스스로 앰프, 증폭기가 돼 가지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관리들, 정치인들의 제발 귀에 들리게끔 온몸을 진동시켜서 목소리 최선을 다해서 자기 목숨을 바쳐서 명인 명창들이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서 꾸짖는 거지요.
남상일: 예.
노재명: 이렇게 흥보가에 보면은 가난해서 자기가 부자들 매를 대신 맞으러 갔다가 그것 마저도 가로채임을 당해서 울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장면, 심청이가 가난해 가지고 자기 목숨을 돈 받고 팔아서 부친을 봉양하는 그런 장면, 또 전쟁터의 그 권력자들간에 전쟁으로 인해서 희생되는 그런 군인들의 안타까운 그런 사정, 이런 것들을 온몸을 진동시켜 가지고 했기 때문에 호령조, 호통조 통성이라는 그런 발성법이 나온 거죠.
남상일: 네.
노재명: 그렇기 때문에 판소리는 단지 귀를 감미롭게 뭐 발라드로 해서 흥미, 재미만을 위해서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우리나라 단군 시대부터 내려왔던 홍익인간 정신,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의인들이 그 몇 천년 동안 굉장히 많았는데 이 판소리 명창들이야 말로 성악 의인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상일: 아! 성악 의인.
노재명: 판소리는 바로 그 의인들의 성악 작품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정신을 높이 사서 고종 황제라든지 예전 임금님들이 나중에 소문을 들어 보니까, 뭐 평양 감사 이런 분들이 “야, 저기 유명한 명창이 그렇게 노래를 하고 다닌다는데 한번 불러 보자” 해서 들어 보니까 그 정신이 아주 고귀하거든요. 그것이 소문이 나서 임금님 귀에까지 들리게 됐는데 임금님이 들어 보니까 이거는 자기를 비판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저 사람들이 목숨을 걸구서 그렇게 통성을 막 몸을 진동시켜서 자기 앞에서도 호령조로 막 하니까, 기 죽지 않고 그런 서민들의 삶을 대변해서 임금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기개를 굽히지 않고 호령조로 하는 그 정신을 높이 사서 저는 임금님들이, 고종 황제 같은 분들이 그 명창들한테 정3품 그런 벼슬들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상일: 와! 아, 잠깐이지만 우리 관장님의 이 강연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구요. 판소리가 왜 판소리구 판소리로서의 그런 가치, 정신, 이런 것들을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느끼시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중고제가 지금 말씀하신 거를 들어보면 뷔페 같은 그 다양한 육해공이 다 함께 섞여있는 그런 매력적인 소리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지금 중고제의 맥이 거짐 끊겼다시피 됐잖아요. 왜 그런 이유가 있을까요?
노재명: 충청도, 경기도, 서울 이 지역이 중고제 판소리의 전승 지역이었는데요. 일찍이 여기는 신문물의 유행이 빠른 지역이기 때문에 고풍스러운 그런 판소리가 일찍 사라지게 되었고 또 충청도 명창, 중고제 명창이 많았는데 충청도는 예로부터 양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이런 예술이 그렇게 크게 존중되질 못하다 보니까, 또한 일제시대 때 식민 교육으로 인해서 이러한 것은 뭐 낙후됐다, 뭐 몹쓸 거다, 이거는 기생들이나 하는 거다, 이렇게 막 천시하는 그런 교육을 강제로 주입을 시키고 하다 보니까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버리게 되는 그런 참사로 이어지게 된 거지요. 하지만 그 중고제는 그냥 한때 유행 지나고 그거는 버려도 되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그거는 소중한 가치로 우리가 교훈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미래 21세기, 22세기에도 미래 음악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그런 자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남상일: 예.
노재명: 그 이유는 중고제 판소리가 가지는 아까 그 말씀 드린 각 개개인의 명창들 개성을 존중한 판소리. 판소리는 꼭 이렇게 불러야 된다 하는 게 아니라 심지어는 떡목을 가진 그런 목소리가 안좋은 명창도 명창으로 될 수 있게끔 인도를 해주고 그런 누구나 명창이 될 수 있었던 그 풍요로운, 자연적인 민주주의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홍익인간 정신이구요. 누가 더 잘 났다가 아니라 못난 사람 없이 다 그 가진 개성을 존중했던 시절이 중고제고 그것이 강하게 표출된 것이 중고제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지금 우리나라가 앞으로 21세기를 선도하는 그런 국가가 된다고 하는데 그런 원동력이 저는 바로 자연적인 민주주의, 홍익인간 정신에 있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예술 속에도 녹아있는 중고제는 앞으로도 굉장한 영향력과 교훈을 우리가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상일: 네, 정말 의미있는 그런 말씀이고 저같은 소리꾼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가슴에 새기면 좋을 그런 말씀을 또 관장님께서 해주셨는데요. 오늘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님 모시고 귀한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끝으로 이 중고제 명창 하면 또 이동백 명창 우리가 생각을 하는데 오늘 관장님께서 귀한 음원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동백 명창의 <새타령> 함께 들으면서 오늘 이 시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우리의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음악 많이 알려주시는 그런 작업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구요. 오늘 귀한 걸음 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노재명: 네, 감사합니다.
남상일: 자, 우리 것 우리 전통문화예술을 소리길따라 찾아본 '전통으로 소리길로' 오늘 끝곡 소개해 드리고 저는 인사 드리겠습니다. 자, 이동백 명창의 <새타령> 만나 보시구요. 저는 지금까지 소리꾼 남상일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신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중고제 명창 이동백 잡가 <새타령> 1928년 음원 소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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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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