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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이보형 조사·집필의 『판소리 流派』(서울: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98~100쪽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의 한자는 한글로 변환하였고 오자를 수정하였습니다. 컴퓨터 입력/교정/편집:국악음반박물관(http://www.hearkorea.com)
판소리 명고수 박오용(朴五用)
현장 조사·대담 정리/이보형(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고문, 한국고음반연구회장)
본명:박오용(朴五用)
생년월일:1926년 5월 27일(병인생, 남)
본적:대전시 중구 은행동 111
출생지:전남 영광군 백수면 홍곡리
박오용은 판소리인이며 고수이다. 박오용은 19세 때 전남 영광에서 최광열에게 호남가 등을 배웠다고 한다. 최광열은 전북 고창 사람이며 판소리인이라고 한다.
박오용은 19세 때 광주로 가서 박학주가 경영하던 전남국악원에서 박학주에게 춘향가 쑥대머리를 배웠다고 한다. 박학주는 전남 화순 출신으로 전문 국악인이 아니고 한량으로 판소리를 좀 했다고 한다.
박오용은 22세 때 광주에 있던 광주국악원에서 정광수에게 춘향가 옥중상봉과 초경이경을 배웠다고 한다. 25세 때에는 광주에서 오천수에게 춘향가 초앞에서 그네 뛰는 대목까지 배우다가 중단했다고 한다. 오천수는 일명 오병수라 하는데 은희진의 의부라 한다.(오천수는 본 조사 은희진 條에 나온다.)
박오용은 20세 때 광주에서 박학주에게 판소리 장단 치는 법을 배웠고 23세 때에는 광주에서 2년간 김명환에게 판소리 고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 뒤 박오용은 광주에서 판소리 고수로 계속 활동하다가 32세 때부터 전남 장흥에서 활동하였고 36세에 다시 광주에서 활동하였으며 42,43세 때 대전에 와서 활동하였고 49,50세쯤에 전북 군산에 있었고 57,58세부터 지금까지 대전에서 고수 활동을 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
박오용이 지금 치고 있는 판소리 고법은 김명환제를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 제를 개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1985년에 박오용은 북작품을 짰었다고 말하고 있다.(여기서 북작품이라는 것은 북가락을 가리킨다.)
박오용은 북의 왼편 가죽을 궁편, 오른편 가죽을 채편, 통의 꼭대기 가운데를 구레, 통의 조금 앞쪽 오른편을 매아점이라 한다고 하였다. 박오용은 김명환이 매화점이라고 하나 자기는 내 마음대로 맺을 수 있는 점이라는 뜻으로 매我점이라 한다고 말하는데 매는 한자로 무슨 자인지 모른다고 했다.(김명환은 궁편, 채편, 온각, 梅花點, 반각으로 북의 타점을 가리키고 있으나 박오용은 梅花點과 반각을 어중간한 타점으로 통일시키고 매아점이라 부르고 있다.)
박오용은 중머리는 12박이나 한장단을 달아서 다음 장단을 24박에 맺어 주는 것을 소삼대삼이라 한다고 했다. 진양은 24박으로 치는데 첫 6박에는 양각으로 {딱--, 딱--}하고 치고 둘째 6박에는 매아점을 {따드락, 딱-닥}하고 치고 셋째 6박에는 {딱--, 딱--}하고 각을 치는데 이것을 표를 낸다고 하고 표박이라 한다고 하였고 셋째 6박에는 {궁구궁, 궁-궁}하고 맺어주고 풀어준다고 했다.
중머리나 중중머리는 12박이나 24박으로 치는데 12박으로 칠 때에는 양이며 24박으로 칠 때에는 12박이 음이 되고 24박이 양이 된다고 하였다. 박오용은 중머리에도 4각이 있는데, 1각은 중각으로 말이 이어나가면서 달고 가는 것이고, 2각은 교각으로 소리가 멈추는 것이며 각을 매주면 딛고 나가며 3각음만 달고 나갈 때는 매아점을 짚어만 주면, 4각은 대각으로 소리가 완전히 맺어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 중머리 12박을 치는 원박은 합궁, 궁편, 매아점, 궁편, 매아점, 매아점, 궁편, 궁편, 구레, 궁편, 궁편, 궁편을 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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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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