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earkoreaTV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국악 음반    
매체별 유성기음반(SP) | 10인치 장시간음반(LP) | 12인치 장시간음반(LP) | 컴팩트디스크(CD) | 카세트테입(MC) | 디지털오디오테입(DAT) | 릴테입(Reel Tape)
마이크로카세트테입(MCT) | VHS 비디오테입 | 8mm 비디오테입 | 6mm 비디오테입 | 레이저디스크(LD) | 시디롬(CD-Rom) | 디브이디(DVD) | 기타자료
장르별 단가 | 판소리 | 창극 | 가야금병창 | 거문고병창 | 산조독주 | 산조합주 | 산조기타자료 | 시나위독주 | 시나위합주 | 삼현육각 | 사관풍류 | 사물놀이
민요연주 | 봉장취 | 민속무용 반주음악 | 기타민속기악 | 정가 | 정악기악독주 | 정악기악합주 | 민요 | 불교음악 | 무속음악 | 민속놀이ㆍ연극 | 풍물
전통춤 | 신작국악

 
판소리 명창 지수복
  jisubok.jpg(사이즈:27.3KByte)
* 이는 이보형 조사·집필의 『판소리 流派』(서울: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185~187쪽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의 한자는 한글로 변환하였고 오자를 수정하였습니다. 컴퓨터 입력/교정/편집:국악음반박물관(http://www.hearkorea.com)

판소리 명창 지수복(池壽福)
현장 조사·대담 정리/이보형(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고문, 한국고음반연구회장)

생년월일:1937년 4월 5일(정축생, 여)
본적:전북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610
출생지:서울시 종로구 봉익동

  지수복은 해금, 피리, 장고의 명인 지영희의 따님으로 부산에 살며 판소리 및 창극인이다. 지수복은 7세 때 한영숙이 무용을 가르친다고 집으로 데려 갔으나 친모 정경순(지수복 20세 때 작고함)이 반대하여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친모는 지수복이 예술하는 것을 반대했다.
  16세 때 계모 성금연에게 2,3년간 단가, 판소리,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을 배우고 또 아버지 지영희와 한영숙에게 승무도 배웠다.(아버지 지영희는 해금의 명인이지만 장고 또한 명인이라 한성준 무용연구소의 반주 악사로 근무하여 무용에 밝다:조사자 주) 지수복은 아버지 지영희가 김광식, 이정업, 김득수와 의형제를 맺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수복은 17세 때 임춘앵 단체에 입단하여 2년간 창극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 단체에는 임춘앵을 비롯하여 김경수, 김진진, 박옥진, 박보아 등의 여러 단원이 있었는데 뒤에 김경애가 들어 왔고 박옥진, 박보아는 삼성국극단을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이 단체에 다닐 때 지수복은 김준섭에게 1년 동안 건곤이와 같은 몇 개의 단가 그리고 춘향가 중 초앞을 배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수복은 19세 때 집에 돌아와 아버지 지영희의 일을 돕다가 이윽고 김경애가 이끄는 햇님창극단체에 입단하여 1년간 수행하였다고 한다. 이 단체에는 김경애, 김정희, 지수복, 조애랑(정철호 부인), 오정숙, 오수연, 이정환(일명 이정자)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경애는 뒤에 새한여성국극단을 조직하였는데 여기에는 김경애, 조애랑, 이정화, 지수복 등이 공연 활동을 하였고 이원경, 이해랑이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이원경은 김경애와 결혼을 하였는데 김경애가 임신으로 단체 주도가 어렵게 되자 지수복이 이 일을 대신했다고 한다.
  지수복은 21세쯤 상경하여 박초월에게 2년간 단가와 판소리를 배웠다 한다. 단가는 강상풍월 등이었고 판소리는 흥보가 전바탕이었다. 그 당시에 조통달이 어린 나이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한다. 지수복은 23,24세 무렵에 결혼하여 관훈동 예술학교 건너편에 살며 은거하였다 한다.
  지수복은 28세때 다시 가정에서 나와 김소희에게 3,4년간 강상풍월, 만고강산, 때마침 등 여러 단가를 배웠고 심청가를 초앞에서 끝까지 배웠다고 하며, 춘향가를 초앞에서 이별가까지 배웠다고 한다.
  지수복은 그 무렵에 박귀희에게 가야금병창을 2년간 배웠다 한다. 그 때 배운 가야금병창은 고고천변, 화초타령, 녹음방초, 호남가, 유색황금눈, 사랑가 등이었고 또 여러가지 신민요이었다고 한다. 그때 배운 신민요들은 이병우와 박귀희가 함께 만든 것들이 많다고 한다.
  지수복은 31,32세 때 부산에 내려와 여관업을 하며 은거하고 살았는데 지금부터 12년 전에 송순섭이 부산예술제 창극 공연을 하면서 부산에 사는 창극인들을 수소문하여 발굴하였는데 그때 지수복이 발탁되어 창극 정발장군에 출연하여 주역을 맡으면서 다시 국악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지수복은 계속 부산예술제 창극 공연에 참가하는 한편 3년 전부터는 학원에 나가 학생들에게 가야금, 판소리, 북을 가르친다고 한다. 지금은 국악협회 부산지부 동구지회장을 맡고 있다.

2006-07-06
 

Powered by GodoTech
Copyright (C) 2000 국악음반박물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