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민요, 신민요 등의 명창 손금홍 딸 신성희 증언 내용 |
|
 |
 |
 |
 |
 |
* 상기 사진은 국악음반박물관이 손금홍 명창의 후손에게 제공한 손금홍 명창의 옛 사진, 그리고 2007년 8월 8일 서울시 양천구 신정3동에서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과 손금홍 명창의 따님 신성희씨 인터뷰 기념 사진.
* 국악음반박물관은 2007년 5월 4일 민요, 신민요 등의 명창 손금홍의 외손녀로부터 손금홍 명창의 녹음을 찾는 전화 연락을 받고
2007년 8월 8~9일 손금홍 명창의 따님에게 국악음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손금홍 명창 사진과 녹음자료를 무상 복사 제공함.
* 그간 인적 사항을 거의 알 수 없었던 손금홍 명창에 대한 정보는 2007년 8월 8일 후손의 증언을 통해 상세히 밝혀졌고 이는 손금홍 명창의 후손이 인터넷에서 손금홍 명창을 검색하다가 국악음반박물관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전화로 제보하여 이루어짐.
* 2007.8.8.14:00~15:00.서울시 양천구 신정3동 음식점에서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이 손금홍 명창의 따님 신성희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2007.9.30 정리/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발표)
민요, 신민요 등의 명창 손금홍 딸 신성희 증언 내용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손금홍은 일제 때 민요, 신민요, 대중가요 등의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고 라디오 방송, 공연 등의 활동을 한 당대에 무척 유명한 명창이자 인기가 많았던 대중가수였다.
그의 딸 신성희의 증언에 따르면 손금홍(본명:손순덕)은 1916년 2월 25일(음력, 양력/주민등록상:1916년 4월 21일) 서울시 종로에서 태어났고 본적은 서울시 종로구 묘동이다.
손금홍의 부친 손모씨는 예술을 하지 않았고 고향은 서울(?), 37세에 작고하였다. 그리고 손금홍의 모친 신문정(가정주부)의 고향은 평양이고 1946년에 환갑을 치루고 1953년경에 작고하였다.
손금홍 언니 손자덕은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손금홍보다 5세 연상이었다. 손금홍은 형제가 언니 손자덕과 함께 그렇게 자매 단둘이었다. 손금홍은 10대 때 서울에서 예술학습소에 들어가면서 음악을 하게 되었다 한다.
손금홍은 19세 때 일본 빅타음반회사에 가서 대중가요 <무정>을 취입했다고 생전에 말했다 한다. 손금홍은 전수린이 발탁하여 가수가 된 것이라 한다. 손금홍은 젊어서 많은 음악 활동을 하다가 대부호 한모씨와 혼인한 후 예술 활동을 모두 중단하였다.
손금홍 시할아버지 한모씨가 유명한 고관대작이었는데 손금홍 혼사 직후 시중에 나돌던 손금홍의 유성기음반을 모두 사들여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손금홍의 유성기음반이 그후 아주 귀해졌다 한다.
그러다가 신성희 초등학교 때쯤 서울의 모 라디오방송국 공개홀에서 열린 옛 노래 특집 방송시 손금홍이 초청가수로 출연하여 노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손금홍은 초혼과 재혼으로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큰딸과 그 아래 아들은 어려서 사망하고 막내딸 신성희는 노년까지 다정하게 같이 지냈다. 손금홍의 딸 신성희는 1947년 4월 13일(음력, 양력:1947년 6월 1일) 서울 성북동에서 태어났다.
신성희는 이상훈과 혼인하여 슬하에 2녀(이진희, 이교희)를 두었다. 손금홍의 딸과 외손녀들은 모두 예술을 하지 않았다. 이중 이교희가 2007년 5월 4일 낮 12시 국악음반박물관에 맨처음 손금홍 후손을 대표하여 손금홍 명창에 대한 제보를 해주었다.
손금홍은 2007년 3월 24일(양력) 오전 5시 50분 무렵에 인천 계양병원에서 92세,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반신마비로 입원한지 일주일만에 하루 혼수 상태가 된 후 별세한 것이다. 손금홍 작고 후 시신은 화장하여 인천 납골당에 모셨다고 한다.
손금홍은 노년에 노래를 즐겨 불렀고 특히 <목포의 눈물>이 18번곡이었으며 친구가 아주 많았다 한다. 친목회, 생일 등 무슨 계모임 때 보게 되면 김소희, 묵계월, 안비취 등의 국악인들과 같이 많이 모여 놀곤 하였다 한다.
손금홍은 영화 감상, 스케이트, 수영, 베이비골프(미니골프),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고 노래뿐 아니라 전통춤, 사교춤도 잘 추었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신성희는 금년 봄 모친 손금홍이 세상을 떠난 후 장수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평상시 늘 노래를 부르고 사셨는데도 목소리 녹음 하나 남겨 놓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국악음반박물관이 제공한 처녀 시절 손금홍 명창의 유성기음반 녹음을 대하고 눈시울을 적셨다.(2007.8.8.14:00~15:00.서울시 양천구 신정3동 음식점에서 명창 손금홍 딸 신성희 증언 내용, 2007년 8월 9일 신성희 소장 손금홍 사진 일부 → 국악음반박물관 기증)
* 2007년 7~12월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국악자료 인터넷 DB구축 정보화(전통예술 아카이브 구축사업 선정) 국고보조금 지원: 문화관광부.
|
2007-09-30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