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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한국음반학 제23호』 논문집(서울:한국고음반연구회, 2013년, 부록 CD음반 내장,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 음원·사진자료·글 제공) 221~225쪽에 실린 글의 초고입니다.
최초로 확인된 판소리 명창 정정렬 장고 반주 1932년 음반 해제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 판소리 명창 정정렬이 장고 반주를 1932년 유성기음반에 취입했다는 사실을 필자 노재명은 2013년 9월 2일 관련 자료를 목격하고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
◯ 판소리 명창 정정렬이 장고 반주를 취입한 것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녹음집은 다음과 같은 유성기음반이 유일하다. 이는 일본에 유성기원반(동판)으로도 존재하고 있고 그 동판의 복사본 녹음이 현재 국악음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디지털오디오테입 관리번호 MIDAT-0187에 수록)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220
Columbia 40393-B(21661) 피리獨奏 神臥爲 韓成俊
◯ 이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한성준 피리시나위(장고:정정렬) 중고 유성기음반은 다음과 같은 컴팩트디스크로 최근 복각, 제작된 바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컴팩트디스크(CD) 관리번호 MICD-5824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 - 전통음악 음반 이야기 ‘반락’ 음반
2013년 4월 10일 오후 8시 한국문화의집 KOUS 공연장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 전통음악 음반 이야기 '반락' 행사 기념 음반.
한국문화의집 CD-008(1CD), 해설·음원·녹음·사진 제공·사설 채록:노재명, 마스터링:양정환, 기획·연출:진옥섭, 무대감독:박경진, 조명감독:이동현, 음향감독:강진석, 사진:옥상훈, 캘리그래피:장사익, 디자인:디자인필 곽연희, 홍보·진행:류찬·김나래, 발행: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이세섭, 제작:대신미디어, 제작일자:2013.4.10. 비매품 한정판 제조.
10. 한성준 피리 독주 <시나위> 1932년 녹음
◯ 이 유성기음반에는 장고 반주자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서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번에 그 반주자가 바로 판소리 5명창 가운데 1명으로 꼽히는 정정렬(丁貞烈, 1876~1938년)이라는 사실이 최초로 공식 확인되었다.
◯ 이 한성준 피리시나위 유성기음반이 정정렬 명창의 장고 반주로 녹음되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문헌 기록이 발견되어 알 수 있었다. 이 자료는 2013년 9월 2일 일본 교토교육대학교 카키우치 유키오 교수가 원본을 촬영한 사진을 대한민국 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노재명을 찾아와 보여주어 알게 되었다. 이는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가 일제 때 한국 유성기음반을 녹음하면서 필기한 연주자 이름, 곡명, 녹음 일시, 녹음 번호, 각종 관리 번호, 녹음기사와 연출자 이름 등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글씨체로 봐서 한국인의 필기로 보인다.
◯ 카키우치 유키오 교수가 필자 노재명에게 제공해 준 상기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의 한국 유성기음반 녹음 필기 문헌 176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정렬 명창의 장고 반주라는 사실과 더불어 이 기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성기음반에는 시나위(神臥爲)라고만 되어 있는데 장단 이름이 적혀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해 한성준 피리시나위(장고:정정렬) 유성기음반이 1932년 11월 4일 오전 11:00~오후 3:30에 녹음되었다는 상세하고 중요한 사실이 비로소 밝혀지게 되었다.
Authorization No: KO-6
Recordineg Report SERIAL No: K-6, KW4/32
SELECTION No: 21661
Sub No: -1 / -2
CLASS: 笛(Piri)
TITLE: 살푸리·국거리 (Salpuli, Kukkori) (サルラ˚リ, クク˚リ)
ARTIST: 韓成俊
ACCOMPANIST: 長鼓 丁貞烈
VERSE WRITER: 빈칸
COMPOSER: 빈칸
ARRANGER: 빈칸
REMARKS: 빈칸
SCHEDULED: 11:A.M
所用時間: 4½hrs
DATE: NOV. 4/32
TIME: 11:A.M / 3:30P.M
◯ 본고에서 언급하는 유성기음반에 다음과 같이 앞면에는 고수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데 뒷면 한성준 피리시나위의 경우에는 장고 반주자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이는 일부러 장고 반주자 이름을 빼고 인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정정렬이 거물급 판소리 명창이고 당시에는 명창이 장단 반주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리 장고 반주자 이름을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상기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의 녹음 필기 문헌 기록이 매우 소중한 것이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유성기음반(SP) 관리번호 MISP-1220
Columbia 40393-A(21660) 南道雜歌 흥타령 吳翡翠·金素姬 鼓韓成俊
Columbia 40393-B(21661) 피리獨奏 神臥爲 韓成俊
◯ 1995년 한국 음반사 LG미디어(LG소프트)가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에 있던 일제시대 한국 음원을 라이선스로 계약해서 복각 CD음반을 제작한 적이 있다. 그 때 일본 회사에서 복사본 녹음과 약간의 목록만 한국 회사에 주었다. 1995년 당시 필자 노재명이 그 음원 고증, 복각 작업을 모두 맡았는데 필자와 한국 회사가 일본 회사에 원판을 보여달라고 했으나 원판은 폐기했고 복사 녹음밖에 없다고 하였다. 관련 가사지, 사진, 옛 목록도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근래에 그 일본 회사는 그 한국 원판(유성기원반 동판)을 일본 박물관에 모두 기증하였다. 해당 유성기음반들의 취입 당시 필기 목록 문헌은 카키우치 유키오 교수 말에 의하면 현재 일본 회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지면을 통해서 최초로 소개되는 것이다. 해당 일본 회사의 한국 유성기음반 관련 가사지는 일본 회사나 일본 박물관에 원본이 존재하고 있으며 한국 방송국 KBS 등에 그 가사지들이 복사되어 현재 한국 곳곳에 퍼져 있으며 해당 일본 회사의 한국 유성기음반 관련 음악가들 사진 원본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충청도 명인들이 판소리, 산조, 병창 등 민속악을 선도하던 때가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악이 가장 급격히 소멸된 곳이 또한 충청도였다. 그렇게 중고제 판소리가 사라져 갔고 고유의 충청도 산조, 시나위도 없어졌다. 시나위는 충청도 민속음악의 중대한 기둥이었는데 지금은 전승이 끊어지고 이 한성준 유성기음반 등 몇가지 시나위 녹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명고수로서 주로 북, 장고 반주자로 유성기음반을 취입하던 한성준은 전통춤, 피리로도 명인이었고 1932년 사명감을 가지고 이 피리시나위 녹음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녹음을 통해 충청도 피리시나위의 호방하고 은근한 멋, 진수가 알려지고 증명되고 복원될 수 있었다.
◯ 필자 노재명은 10여년 전에 국악악단 ‘풍류’ 조성환 대표에게 한성준 피리시나위 음원을 제공하고 복원 공연을 기획하여 몇 차례 연주회를 개최한 바 있다.(장고:신성수) 조성환, 신성수 연주자 모두 충청도 국악인으로서 이러한 충청도 전통음악을 계속 연구, 연마하고 있다.
◯ 그 동안 이 한성준 피리시나위 유성기음반은 피리만이 아니라 장고 장단 반주도 기가 막힌 명연으로 여겨졌는데 상기와 같은 기록을 통해서 반주자가 정정렬 명창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정정렬이 판소리뿐 아니라 장단 반주도 대단한 명인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는 정정렬이 얼마나 뛰어난 음악가인가를 증명해 주는 점이라 하겠다. 정정렬 명창이 판소리 붙임새의 달인이었고 정정렬제가 오늘날에도 ‘고수 킬러’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장단 활용에 있어 특수한 장점이 있고 정정렬 동생 정원섭 명고수가 타악에 능했던 만큼 정정렬이 타악에 능숙했던 것은 어색하거나 이상한 점이 아니라 하겠다. 임방울 명창의 경우는 타악을 무척 못했다고 하나 판소리 명창들 중에는 정정렬처럼 장단을 잘 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 필자 노재명은 소리극 '판에 박은 소리 춘향' 공연(2013년 6월 6일~12월 12일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공연, 자료 제공·자문:국악음반박물관) 안내 인쇄물 5~6쪽에 발표한 축사 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번에 정정렬 명창이 장고 장단 명수이기도 했다는 점이 밝혀졌으므로 꽹과리 등 타악에 능했고 실제로 녹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다음과 같은 의견에 입증 자료 하나가 보태졌다고 하겠다.
“‘정정렬 도창 창극 춘향전’ 빅타판 녹음 중에서 <농부가>를 들어보면 꽹과리, 장고 연주 농악 가락이 있고 음반에는 누가 연주했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꽹과리는 정정렬 명창, 장고는 한성준 명고수가 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 한성준 피리시나위 취입 때 기록된 음반회사측 필기 문헌을 참고해 보면 당시 장단을 맡을 만한 전문 고수가 현장에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콜럼비아음반회사의 녹음 필기 목록 문헌에 의하면 한성준 피리시나위 취입 당일 현장에 함께 있던 국악인은 서도소리 명창 김복진과 한경심, 판소리 명창 정정렬, 김소희, 오비취 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판소리를 취입하러 갔던 정정렬이 그 한성준 피리시나위 장단을 맡게 된 것인데 장단의 대가 한성준이 반주를 믿고 맡기고 마음껏 피리를 불 수 있는 정도의 뛰어난 장단 실력을 정정렬 명창이 지녔었다고 하겠다. 이는 국악계의 명음반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 혹시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를 한성준 피리시나위(장고:정정렬) 유성기음반 1932년 11월 4일 취입 기념 사진이 발견되기를 기원해 본다.
◯ 이 해제 글은 2013년 9월 20일 작성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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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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